동민과 고든
바야흐로 약 10여 년 전, 대학교 교양 수업 ‘패션스타일링’ 시간이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동민은 언제나 포마드를 잔뜩 발라 넘긴 올백 머리에 빳빳한 데님, 뒷주머니에 꽂아놓은 장지갑에 주렁주렁 매달린 체인, 그리고 항상 무거운 구두를 신은 채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다녔다. 20대 초반이었던 고든은 그런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강렬한 동경심을 느꼈고, 언젠가 꼭 말을 걸어보리라 남몰래 다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맨 앞자리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동민은, 수업 중 넌지시 질문을 던진 교수님을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보통 교수의 가벼운 질문에는 손을 드는 학생도 없을뿐더러, 대답을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앉은 자리에서 웅얼거리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네, 동민 학생 말씀하세요.”라는 교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홱 돌더니 강의실의 학생들을 향해 마치 연설하듯 발표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고든은 당혹스러우면서도 그의 비범함에 압도당했다. ‘그에게 오늘 반드시 말을 걸어야겠다.’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린 고든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소변부터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돌아가서 당당히 옆자리에 앉자고 말을 걸 참이었다. 그런데 손을 씻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올백 포마드 빳빳 데님 주렁 체인 또각 구두 소년을 그 자리에서 마주쳐버렸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기어코 마주친 실존적 필연, 아모르 파티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활기차게 소변을 뿜어내고 있는 그의 등 뒤에서 말을 거는 건 아무래도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 같았다. 고든은 세면대로 가 손가죽이 벗겨질 만큼 박박, 아주 오래, 그리고 LAZY하게 손을 씻으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그가 볼일을 마치고 손 씻기를 생략하지 않길…!’
고든의 염원에 하늘이 응답한 것일까. 마침내 올백 포마드 빳빳 데님 주렁 체인 또각 구두 소년이 세면대 옆자리로 등장했다. 고든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혹시… 혼자 오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