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민
첫돌에 손목과 열 손가락에 끼워진 순금 열댓 돈이 곧 가계 유동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으며 자본주의 시스템의 환대와 한계를 동시에 체감했다. 일곱 살 무렵 오른손, 5년 후에는 왼손 젓가락질을 연달아 숙달하며 한 손 상실에 대비한 식사 기능의 이중화를 일찍이 마쳤다. 열다섯 살 무렵 서든어택에서 총기류 대신 날붙이를 택하는 신뢰 기반 근접전을 지향하며 Tit for Tat을 인생의 전략으로 채택했다. 이때 비주류를 열망한다는 자기 인식을 얻었다고 한다. 이 열망은 한때 1940년대 아메리칸 워크웨어 애호로 구현되었고, 그 차림새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도치 않게 유치했으나 얻은 결론은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 무감하다는 본인의 속성이었다. 현재는 사회화의 결과로 해당 복식은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십대 후반에는 부동산 투자로 약 2년치 연봉만큼의 수익을 익명의 시장 참여자에게 안겨주었다. 회사에서는 경영과 서비스 기획과 프로젝트 관리와 웹 개발과 퍼실리테이팅과 공공·금융 분야 애플리케이션 및 인프라 아키텍처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다.
링키케어, 링키라운지, 레이지데이 북클럽, 레이지클럽 등 O2O 서비스를 출시했고, 현재는 주로 레이지데이 북클럽에서 독서모임장으로 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네비올로 품종의 포도주를 즐겨 마시고 싶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더보기

천고든
20세기말 여름, 길병원에서 장발 우량아로 태어났다. 출생부터 남달랐던 그는 피아노와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며 패션디자이너를 꿈꾸었으나, Fashion에 대한 Passion이 식어 4학년 2학기에 돌발 자퇴했다. 이후 직접 공간을 디자인하고 인테리어한 사당역의 링키라운지를 거점으로, 레이지데이 북클럽과 레이지클럽에서 기획자와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마케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강제로 다녔던 논술 학원의 영향으로 여러 분야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회상한다. 15세 무렵에는 무려 119개의 프리드리히 공식을 암기하여 3×3×3 큐브를 10초대에 맞추는 등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2024년 처음 출전한 마블런 10km에서 47분의 기록을 달성한 후 미련 없이 달리기를 관두었으며, 현재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은 네그로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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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민
학창 시절, 미술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승부욕 탓에 ‘수능을 잘 보고 싶다’는 오기로 공부에 몰두하다, 정작 입시 미술에는 떨어져 일반대에 진학하는 엉뚱한 출발을 했습니다. 일찍부터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찾아 헤매며 철학과를 지망했지만, 철학과가 점차 사라지던 시대적 흐름에 부딪혀 가장 결이 비슷한 사회학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후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저의 질문은 이내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로 확장되었습니다. 마침 “나의 행복은 무대에 있다”는 친구의 확신에 찬 한마디에 매료되어 극단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제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연기 그 자체가 아니라, 연기를 사랑하는 이들의 빛나는 열정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열정 있는 삶이 행복일까’라는 새로운 질문과 함께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움직임을 통해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을 체감하며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기록해야 인생이 바뀐다”며 늘 쪽지를 들고 다니시던 담임 선생님의 영향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를 쓰면 남들보다 인생을 두 배 더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인생 두 배 이벤트라 여기며 신나게 시작한 기록은 점차 글을 읽고 쓰는 재미로 번졌습니다. 미술, 연기, 운동 등 다양한 예체능에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번번이 재능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고, 그때마다 글로 힘든 시간과 생각을 흘려보내며 책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좋은 움직임을 만들고,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사람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제가 추구하는 삶에 맞닿아 있다고 느낍니다. 지금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참고자료를 수집 중입니다. 책 속의 삶과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이제 북카페 믕밍의 초보 지기가 되었습니다. 책이 가득한 이 공간이 저와 여러분을 위로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 짧은 글과 믕밍에서의 시간이 여러분의 이야기와 만나, 함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피어오르게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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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호
중학생 때 홀로 유학을 떠났다. 낯선 환경 탓인지 한국 소설을 유독 많이 읽었고, 대학에서는 학점 때문에 들은 교양 수업에서 존 밀턴의 『실낙원』을 접한 뒤 별다른 고민 없이 영문학을 전공으로 정했다. 이후 미국 동서부를 거치며 직장을 다녔다. 한때 몸무게가 100kg을 넘겼을 만큼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10년째 매일 비슷한 저녁 메뉴를 먹는다. 23살에 처음 일을 시작한 이래 다섯 번 직업을 바꿨다. 재미와 흥미를 우선으로 두는 독서를 하고, 심야 영화 같은 취미는 혼자 다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본업과 자산을 잘 밝히지 않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SNS는 하지 않으며, 좋아하는 음악은 쳇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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